성경의 ‘제삼시’·‘밤 사경’은 지금 몇 시일까요 — 낯선 시간 표현 앞에서 감 잡는 법
제삼시·제구시·밤 사경 같은 말에서 자꾸 멈추셨다면, 낮과 밤을 세는 원리를 잡고 읽다가 바로 어림하는 순서를 정리해 드릴게요.
2026년 10월 기준

‘제삼시’에서 멈칫하셨다면, 시계가 달라서 그래요
성경을 읽다가 ‘제삼시’, ‘제구시’, ‘밤 사경’ 같은 말이 나오면 잠깐 멈칫하게 되시죠? 분명 시간을 말하는 것 같은데 지금 시계로 몇 시인지 떠오르지 않으니, 장면이 아침인지 한낮인지도 흐릿해져요. 이 글에서는 성경 속 시간 표현이 어떤 원리로 세어지는지, 읽다가 만났을 때 어떻게 확인하면 되는지 차근차근 정리해 드릴게요.
먼저 안심하셔도 돼요. 이 표현들이 낯선 건 읽는 분의 탓이 아니라, 시간을 세는 출발점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이에요. 오늘날 우리는 자정부터 시각을 세지만, 성경이 쓰인 시대에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기준으로 낮과 밤을 따로 나눴다고 널리 설명돼요. 이 원리 하나만 잡으시면 나머지는 생각보다 금방 풀려요.
낮 시간은 해 뜰 무렵부터 세면 돼요

신약 시대에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의 낮을 열두 부분으로 나눠 불렀다고 설명돼요. 요한복음 11장 9절에도 낮이 열두 시간이라는 말이 나와요. 그래서 ‘제삼시’는 해 뜬 뒤 세 번째 시간, 지금으로 치면 대략 오전 아홉 시 무렵이 돼요. 방법은 간단해요. 숫자에 여섯을 더해 보시면 오늘날 시각과 얼추 맞아요.
근데 여기서 하나 알아 두실 게 있어요. 이 시간은 시계 눈금처럼 딱 떨어지는 시각이 아니에요. 해가 뜨고 지는 때는 계절마다 달라서, 낮 한 ‘시간’의 길이도 여름과 겨울이 달랐다고 해요. 분 단위 시계가 없던 때라 ‘제삼시’는 아홉 시 정각이라기보다 ‘아침나절’에 가까운 말로 받아들이시면 돼요. 아래 목록은 자주 만나는 네 가지 표현을 같은 기준으로 나란히 놓은 거예요.
이 감각으로 포도원 품꾼 비유를 다시 읽어 보시면 차이가 선명해져요. 제십일시에 온 사람은 해 지기 직전, 하루 일이 거의 끝날 때 온 셈이에요. 숫자 하나를 알았을 뿐인데 이야기의 대비가 또렷해져서 읽는 맛이 한결 좋아져요.
- 제삼시 — 대략 오전 아홉 시 무렵. 마가복음 15장과 사도행전 2장에 나와요
- 제육시 — 대략 한낮 열두 시 무렵.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기도하러 올라간 때로 나와요
- 제구시 — 대략 오후 세 시 무렵. 사도행전 3장에는 기도 시간으로 소개돼요
- 제십일시 — 대략 오후 다섯 시 무렵. 포도원 품꾼 비유(마태복음 20장)에서 하루 일이 끝나기 직전의 시간이에요
밤은 ‘시’가 아니라 ‘경’으로 나눠 불렀어요
밤에는 다른 단위가 나와요. ‘경’은 밤을 몇 구간으로 나눠 번갈아 파수를 서던 데서 온 말로, 한 시각이 아니라 몇 시간짜리 구간을 가리켜요. 신약에서는 로마식으로 밤을 네 구간으로 나눈 방식이 쓰였다고 널리 설명돼요. 마가복음 13장 35절에 나오는 ‘저물 때, 밤중, 닭 울 때, 새벽’이 이 네 구간과 맞닿아 있다고 풀이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래 목록은 신약의 네 구간을 기준으로 정리한 거예요.
그래서 마태복음 14장의 ‘밤 사경’은 네 구간 가운데 마지막, 대략 새벽 세 시부터 해 뜰 무렵까지예요. 제자들이 밤새 바람과 씨름하다가 날이 밝아 오기 직전이었다는 뜻이니, 장면의 고단함과 반가움이 함께 읽혀요. 구약에서는 밤을 세 구간으로 나눴다고 설명하는 자료가 많고, 사사기 7장의 ‘이경’이 그 예로 자주 소개돼요.
여기서 많이들 헷갈리세요. 우리말에도 ‘삼경’, ‘오경’ 같은 말이 있다 보니 같은 뜻으로 읽기 쉬운데, 우리 전통은 밤을 다섯으로 나눴고 성경 속 ‘경’은 셋 또는 넷으로 나눈 것이라 가리키는 때가 서로 달라요. 번역하면서 익숙한 한자어를 빌려 왔다고 이해하시면 편해요. 숫자가 같아도 시계는 다르다는 점만 기억해 두시면 충분해요.
- 일경 — 해 진 뒤부터 대략 밤 아홉 시까지. ‘저물 때’에 해당해요
- 이경 — 대략 밤 아홉 시부터 자정까지. ‘밤중’에 해당해요
- 삼경 — 대략 자정부터 새벽 세 시까지. ‘닭 울 때’에 해당해요
- 사경 — 대략 새벽 세 시부터 해 뜰 무렵까지. ‘새벽’에 해당해요
하루의 시작과 요한복음의 시간은 여유 있게 읽으세요
알고 보니 하루가 시작되는 때도 지금과 달랐어요. 유대 전통에서는 해가 질 때 새 하루가 시작된다고 여겼다고 널리 설명돼요. 창세기 1장에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순서가 되풀이되는 것도 이 감각과 이어서 읽는 경우가 많아요. 안식일이 저녁에 시작된다는 점을 알면, 복음서에서 해 지기 전에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는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이해돼요.
요한복음에 나오는 시간은 조금 더 여유를 두고 읽으시면 좋아요. 요한복음의 ‘제육시’, ‘제십시’ 같은 표현을 다른 복음서와 같은 방식으로 센 것인지, 다른 방식으로 센 것인지를 두고 견해가 나뉘거든요. 같은 사건의 시간이 복음서마다 다르게 보이는 대목도 있어서 여러 설명이 나와 있어요. 이 글에서는 어느 쪽이 맞다고 정하지 않고, 이런 설명들이 있다는 것까지만 알려 드릴게요.
이런 대목에서는 정확한 시각을 가려내려 애쓰기보다, 글쓴이가 왜 굳이 시간을 적었는지를 살펴보시는 편이 읽기에 훨씬 도움이 돼요. 한낮의 더위인지, 날이 저물어 가는 때인지 같은 분위기만 잡아도 장면이 충분히 살아나요.
시간 표현을 만나면 이 순서로 확인해 보세요

이제 실제로 읽다가 시간 표현을 만났을 때 따라 하실 순서를 정리해 드릴게요. 대부분은 첫 두 단계에서 풀리고, 궁금함이 남을 때만 다음으로 넘어가시면 돼요.
번역본에 따라 ‘제삼시’처럼 원래 표현을 살리기도 하고, ‘아침 아홉 시’처럼 오늘날 시각으로 풀어 옮기기도 해요.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게 아니라 목적이 다른 거예요. ‘내곁에 성경’ 앱의 번역본 비교처럼 같은 구절을 두 번역으로 나란히 펴 보시면, 내 어림이 맞았는지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편해요.
시간을 정확히 외우실 필요는 없어요. 낮은 해 뜰 때부터, 밤은 구간으로, 하루는 저녁부터라는 세 가지만 기억하셔도 대부분의 대목이 편안하게 읽혀요. 다음에 ‘제구시’가 나오면 멈추지 말고 ‘오후 세 시쯤이구나’ 하고 반갑게 읽어 나가 보세요. 장면에 햇빛의 기울기까지 그려지는 즐거움이 있을 거예요.
- 1단계 — 낮인지 밤인지 보기: ‘시’가 붙으면 낮, ‘경’이 붙으면 밤 이야기예요
- 2단계 — 낮이면 여섯을 더하기: 제삼시는 아홉 시 무렵, 제구시는 오후 세 시 무렵으로 어림해요
- 3단계 — 밤이면 구간으로 떠올리기: 사경은 한 시각이 아니라 새벽녘 전체를 가리켜요
- 4단계 — 다른 번역본 펴 보기: 시간을 오늘날 시각으로 풀어 옮긴 번역이 있으면 바로 확인돼요
자주 묻는 질문
제삼시는 정확히 오전 아홉 시인가요?
정각이라기보다 ‘아침 아홉 시 무렵’으로 보시면 돼요. 해 뜨는 때가 계절마다 달랐고 분 단위 시계도 없던 시대라서, 시간 표현은 대략의 때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고 설명돼요.
구약에도 ‘제삼시’ 같은 표현이 나오나요?
숫자를 붙여 낮 시간을 부르는 표현은 주로 신약에서 만나게 돼요. 구약에서는 ‘아침’, ‘정오’, ‘저녁’, ‘해 질 때’처럼 하루의 때를 가리키는 말과 밤의 ‘경’이 더 자주 나와서, 문맥만으로도 때를 짐작하기 쉬운 편이에요.
요한복음의 시간은 왜 다른 복음서와 달라 보이나요?
요한복음이 시간을 세는 방식을 두고 여러 견해가 있어요. 다른 복음서와 같은 방식이라는 설명도, 다른 방식이라는 설명도 있어서 한쪽으로 정해 말하기는 어려워요. 장면의 분위기를 잡는 데 집중하시면 읽는 데는 충분해요.
이 글은 입문자 기준으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일반 정보이며, 내용은 운영 과정에서 순차적으로 점검·보완될 수 있습니다. 신학적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특정 입장을 단정하지 않으니, 자세한 내용은 소속 공동체나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함께 참고해주세요.